세상에는 없어저야 할 말들이 많습니다. 욕설이라든지, 거짓말 등입니다. 그중에 이런 말은 하루 속에 없어져야 할 말입니다. ‘남보란 듯이 살겠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지, 왜 ‘남 보란 듯’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남 보란 듯 살겠다’는 말 속에는 깊은 열등감과 과시욕이 동시에 배어 있습니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는 것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사람은 별것 아닌 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합니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의기양양합니다. 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삽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과시(自己誇示)의 유혹을 많이 받기 마련입니다. 열등감을 은폐하기 위해서입니다. 열등감이 클수록 자기과시가 심하고 뻥이 셉니다. 얼굴에 자신이 없을수록 화장이 진해지고, 말에 진실성이 떨어질수록 말의 허세가 많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퍼뜨리기에 바쁩니다. 대부분이 ‘자기과시용’입니다. 비싼 외제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장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 여행 장면, 예쁜 옷을 입은 장면,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사진, 애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 등…. 왜들 이러는 걸까요? ‘나, 이래 봐도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과시를 통해 서로 친해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페이스북이나 단체카톡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쉴 새 없이 전송돼 오는 자기과시용 메시지에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과시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남 보란 듯’, ‘자기과시’는 인생 유기(人生 遺棄)’입니다.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타 인생’이라고나 할까요? 낙타는 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메마른 사막 길을 터벅터벅 걷습니다. 낮의 무더위와 밤의 추위를 온 몸으로 견딥니다. 하지만, 낙타의 등에 실린 짐짝들 가운데 자기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낙타는 오로지 주인의 짐을 지고, 주인이 정한 길을, 주인의 시간에 맞춰 움직일 뿐입니다. 열심히 살지만, 정작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보란 듯’ 사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낙타가 사자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낙타가 노예로 살아온 것을 인식하는 순간, 내 안의 사자가 깨어나, 자기혁명의 불씨가 점화된다는 설명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의해 상처받고, 좌절하고, 절망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타인의 평판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결정짓지 못 하게 하십시오!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사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