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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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CHURCH

제목휴~ 또 무엇을 고쳐야 합니까(논문을 마치고)(2010.12.12)2022-04-26 11:45
작성자 Level 10

2006년 공동의회이다.

"어려운 부탁이지만 10년의 목회를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정중하고 성도들에게 안건을 내어 놓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느 집사님께서 당연히 하셔야 한다고 동의와 제청을 해 주셨다.

 

이제는 어느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여러 고민 끝에 미국의 4대 개혁주의 신학교(웨스트민스터, 칼빈, RTS, 커버넌트)중에 RTS를 정했다.

RTS는 당시 한국에 총신대학교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공부하기에 여러가지로 유익했다.

 

시험을 보고 면접을 치루었다. 드디어 공부 하는 것을 허락받고 시작했다.

여름과 겨울에 3주간씩 4학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3주간씩 교회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주간씩 6학기를 할 계획을 세우고 수업에 들어 갔다.

 

학교에서 공부를 한지가 꽤 지나서 그런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에서 5시까지 수업을 듣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것이기에 최선을 다 했다.

수업을 듣는 것을 재미있고, 때에 따라서는 지루했지만 더욱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레포트를 쓰느 것이었다.

박사 공부의 레포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레포트를 작성해 나갔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목회 현장이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것인가?

 

이렇게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이력서에 줄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인데, 박사 학위를 받아서 어디에 쓸려고 하는가?

이렇게 한다고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도 아닌데, 뭐할려고 이 고생을 하는가?

하는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미 공동의회가 허락을 했고, 혹시라도 나의 논문이 도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과 개척을 준비하는 교회와 개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시작을 하였다.

 

4학기 중에 한 학기는 반드시 미국의 본교를 방문해서 2 주간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학교 규정이기에

2008년에는 미국을 방문해서 공부도 하였다.

2009년데는 대만에 가서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요구하고 있는 모든 수업을 마쳤다.

 

이제는 그 동안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논문을 쓰는 시간이다.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논문의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

기껏 생각해서 제목을 정하여서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 제목을 어떻게 아카데믹하고 풀어 갈 것인가? 등등의 고민을 더 하게 하신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주여! 좋은 좋은 논문 제목을 주시옵소서" 영감이 떠 오른다.

내가 목회한 것을 정리하자.

우리 지역의 상황들을 점검을 하고 내가 개척할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점검하고, 이 논문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제목,,,,,

 

드디어 "도시화되어가는 지역에서 교회 개척(맑은샘교회을 중심으로)"

교수님께서 아주 좋은 제목이라고 격려 해 주셨다.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제목을 정했는데 여기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로회신학대교 도서관, 한국성서신학대학교 도서관, 국회 도서관, 인터넷 활용, 총신대학교의 도서관,

추천 서적들

설문 조사등으로 하나 하나 논문이라는 집을 지었다.

 

서론, 본론, 결론, 제안 등을 써 나가는데 1년의 세월이 흘렀다.

논문을 쓰다가 나의 한계에 부닥쳤다. 그 때에 또 다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에 김은수 교수님께로부터 "논문이 어떻게 되었냐고?" 전화를 통해서 물어 오시면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나중에는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그래서 억지로 나가서 미팅을 하고 도전을 받고 또 조금 쓰다보면 또 한계를 접하게 되고.. 반복이었다.

 

그러던 2009년 무릎을 수술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정리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문뜩 이제는 올해는 반드시 논문을 마무리한다는 다짐을 하고 다시 도전하였다.

드디어 2010년 3월 제주도에서 디펜스

그리고 2010년 12월 7일에 감격스러운 목회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게 되었다.

 

동기들의 박사학위 받는 과정들을 한분 한분 간증을 듣는데 나도 눈에 눈물이 가득

박사는 "박이 터져야 한다(머리가 터져야 된다) 말에 모두가 웃으면서 동감을 하게 되었다.

어떤 목사님은 박사학위를 마치면 어느 대학원에 교수로 임용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만 디펜스를 마치고 마무리 하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누가 말했던가 "무에서 유를 창조"

그 의미는 어렵고, 눈물이 있어야 하고, 고독을 경험해야 하고, 두려움의 밤을 보내야 하고, 야곱처럼 씨름해야 하는데 결국은 상처만 남는 그 것,

 

그렇다! 우리네 인생은 늘 무에서 유를 창조 할 수 밖에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땅에 충만, 땅을 정복, 다스리림"의 명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짧은 시기에, 얼마나 많은 열매를,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는가는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는 그 은혜를 믿고 노력했는가에 따라서 달라 질것이다.

 

1996년 34평에서 시작한 사역이 이제는 564평의 면적의 땅을 가졌다.

4명(어른 두명, 유치부 두명의 시작이 이제는 약 400명의 식구가 되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생각으 들었다.

 

이제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참으로 편하다.

 

뒤에서 기도하여 주신 온 성도님들과 당회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의진 여진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다.

감사합니다.

김경자 : 수고하셨습니다.
박사학위의 의미도 깊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새로운 전환을 맞이 하기가 쉽지 않을 진대, 목사님의 수고와 노력이 보는 모든 이들과 후배들에게 필히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정말 잘 하셨고 축하드립니다. (12.25 1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