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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CHURCH

제목목사의 고민과 사람의 고민(2009.05.20)2022-04-26 11:38
작성자 Level 10

갑자기 무릎이 퉁퉁 붓기를 시작했습니다.

실은 1996년 해성교회에서 8년의 사역 기념으로 성지순례를 보내 주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슴벅찬 기대감으로 출발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천국의 기쁨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그 땅, 주님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 땅, 십자기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걸으셨던 골고다의 언덕, 고뇌의 밤을 보내셨던 감람산, 구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지금도 성지 순례를 생각하면 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속구친다.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예수님께서 피난하셨던 그 길을 따라서)

이집트에서 다시 이스라엘로(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 갔던 그곳)

이스라엘에서 로마로(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 곳)

 

성지 순례를 마칠 즈음에 로마에서 바울의 참수당한 곳을 가기 위해서 버스에서 내렸는데 그만 무릎이 삐끗!

그 이후로는 여행을 못하고 차 안에서 혹은 절둑거리면서 여행의 마지막을 보내고 드디어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

얼마나 무릎이 아픈지 비행기 뒤 좌석에 환자석을 만들어서 돌아 왔다.

 

돌아와서는 침과 약을 통해서 어느 정도 통증을 가라앉히고 사역들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거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전도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만 허락하신 것 같았다.

 

어느 집사님의 배려로 수영을 배우게 되었고, 수영을 통해서 무릎의 통증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자유형, 접형, 배형은 괜찮은데 평형(일명 개구리 수영)을 할 때에 다리를 잘 못펴면 얼마나 무릎이 아픈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일이 합쳐저서 이제는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고민이 생겼다. 어디에서 할 것인가? 고대 안암병원, 한양대본교 병원, 강남의 개인병원, 장현의 병원 등등 고민 끝에 한양대구리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문제는 성도들이다.

목사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목사로서는 쪽팔리는 일(?)이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선포를 했다 "병문안 금지"

주일 예배를 마치고 김태진 장로님의 섬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11일 12시쯤 수술이 시작이 되었다.(하반신 마치를 하고, 수술을 마친 이후에 회복실을 거친 이후에 입원실로 왔다.

평생에 병원 심방만 다녔지, 내가 직접 겪은 것은 47년의 삶속에 처음이다.

그래서 이제는 환자들의 마음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이 주의 은혜이다.

마치가 깨어나는 시간이다. 하반신 마취를 하였기 때문에 24시간 일어나면 안된다고 경고를 한다.

이유를 말해 주면 좋겠는데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냥 24시간 누워 있으라고 한다.

문제는 소변이 문제이다. 아내가 옆에서 병간호를 하는데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도 건강이 좋지 않은데 병간호라니...

아내를 설득해서 집에 보내고 혼자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수술 이후에 내 다리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하반신 마치를 하였더니 허리 아래로는 꼬집어도 감각이 없다. 소변을 볼려고 힘을 주어도 감각이 없다. 아! 하반신 마비가 이런 것이구나! 하반신 마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변을 보고 싶은데 소변은 안나오고 방광에서는 꽉 찼으니 내 보내라고 뇌에 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인내에 한계를 느껴 간호사를 불렀다. "소변 볼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예 의사 선생님을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20분이 지났다. 미칠 정도로 통증이 왔다. 드디어 의사의 도움으로 소변을 보았다. 800ml

이렇게 밤에 두세번을 보고 나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이 와도 금식이란다. 서서히 마치 풀린다. 발 가락을 꼼지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술한 다리의 발가락은 그대로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드디어 마치가 풀렸다.

성도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목사인가보다.

수술하는 날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에 김정식 장로님과 배춘애 권사님께서 다녀가셨다고 한다.

화요일에 점심 시간에 이건재 장로님께서 오셨다. 시골에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오셨다. 그리고 저녁에 이건재 장로님께서 또 오셨다. 참으로 감사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사 문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난 홍영해 집사와 이이쁜 집사가 다녀 갔다.

그 이후로 성도들이 갑자가 보고 싶어진다.

성도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아 이것이 병상에서의 그리움이구나

괜히 성도들에게 "병문안 금지"라는 명령을 내렸는가? 후회도 된다.

그런데 목요일에 야베스 식구들이 모두 오셨다. 보고 싶었던 얼굴들 중에 양귀례 집사님도 보인다 얼마나 감사한지 아픈 다리를 이끌고 포옹을 다했다.

그런데 병실에 같이 있는 환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밖으로 인도했다.

권사회 회장되시는 최경숙 권사님, 안수집사회 회장님 되시는 정헌치 안수집사님 그리고 몇분들의 병문안, 주일에 민들레 목장의 병문안

월요일에 노회 목사님들, 시찰회 목사님들의 병문안

그리고 화요일에 퇴원했다.

목사에 말에 순종해서 병문안을 안 오신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목사에 말에 불순종하고 병문안을 오신 분들에게는 더욱 감사가 된다.

이것이 목사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다.

어제는 병문안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던지 벵갈로 목장에서 목장식구들이 내가 좋아하는 둘리안을 베트남에서 택배로 부쳐 와서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 동안 뵙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퇴원을 하였지만 완전한 퇴원은 아니다. 집에서 병원에서 있는 것 같이 일주일을 더 있어야 한다.

나의 절제력을 테스트하는 시간이다.

 

성도님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배운 것이 많다.

성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 예전에는 피상적으로 대했는데 이제는 피상적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나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를 더욱 크게 드린다.

 

뒤에서 기도해 주신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부족한 종이 없는 중에 교회를 지키시며 기도하시고 말씀을 전해 주시는 장로님들께 더욱 감사를 드린다.

 

 

이미희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 성도들이 있잖아요!^^ 속히 완쾌하시어 예전의 모습그대로 힘차게 잔소리도 하시고 화도 내시고 그러세요. (가끔씩이예요) 저희들이 참고 견딜게요. ^^ (05.20 23:17) 
김정식 : 목사님 저도 2005년도 7월에 아산병원에 난생처음 20일입원하여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는데 병원생활이 주마등 같이 지나 갑니다 목사님 여러가지로 그동안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고 많은 것으로 재충전 되었을 줄 믿습니다 목사님 홧팅!!! (05.21 13:36) 
윤경숙 : 때론 말씀에 불순종해야 하는 것을*^^*.성급하게 나오신것 같아서 염려가 됩니다. 찾아뵐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넘어진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완쾌될때까지 편하게 지내세요 목사님 힘내세요!!! (05.21 19:37) 
한은자 : 그냥 눈물부터 납니다 그래도 목사님도 성도님들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아으면하는 마음뿐입니다 서투룬 기도지만 열심히 할께요 빠른 쾌유빕니다 (05.21 21:58) 
남유현 : 순종과 불순종의 기로에 서서 참 많이 고민하게 만드신 목사님... 하지만 불순종을 선택한 것이 나을뻔 했어요 아쉬운 후회는 잠시하고 빨리 회복하세요^^ (05.22 17:17)